나이키 덩크는 1985년 대학 농구화로 소박하게 탄생했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더들의 꾸준한 사랑에 힘입어 2002년 SB 라인을 정립하면서 게임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2005년 시티 시리즈 마지막 작품으로 뉴욕 ‘피전’ 덩크 로우가 출시되었을 때는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구매 인파가 몰려들었고, 이 장면은 오늘날 스니커즈 문화를 탄생시킨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알다시피 제품을 빈 캔버스 삼아 끝없는 콜라보레이션과 한정판 에디션을 내면서 수집가들을 유혹하는 데 나이키만큼 능한 브랜드는 없다. 심지어 신도 39명이 자살한 컬트 종교 ‘천국의 문' 사건에서 영감받은 덩크 하이까지 있을 정도다. 당연히 영화 에디션도 많다. 나이키 덩크의 가장 상징적인 모델 중 하나인 ‘제다이’부터 최근작 ‘웡카’까지, 영화에서 영감받은 나이키 덩크 모델 중 가장 독특하고 인기 있는 작품 여덟 개를 모았다.

| 나이키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

<나이트메어>(1984) 스틸

나이키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 초기 디자인

나이키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 디자인 변경 후

나이키 에어 맥스 95 '프레디 크루거'

나이키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는 대중에게 공식 판매된 적 없다. 하지만 멋진 디자인과 뒷이야기, 희소성이 겹쳐 나이키 덩크 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 에디션이 되었다. 나이키는 2007년 할로윈을 앞두고 공포영화에서 영감받은 ‘호러팩'을 출시할 예정이었다. 그중 <나이트메어>에서 따온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는 이 악당의 시그니처인 줄무늬 스웨터, 녹아내린 얼굴 가죽, 금속 무기를 디자인 요소로 승화시켰다. 흩뿌려진 핏자국은 화룡점정이었다. 하지만 <나이트메어> 라이선스를 보유한 뉴라인 시네마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프레디 크루거의 스웨터 디자인은 실제로 상표 등록이 된 상태였다. 나이키 SB 팀은 소송을 피하기 위해 줄무늬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변경했다. 하지만 그걸로 영화사를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나이키는 공식 출시 직전 모든 매장에서 신발을 회수하여 폐기처분했다. 그럼 소더비를 비롯 경매 사이트에서 고급 승용차 값에 팔리는 저 나이키 SB 덩크 로우 ‘프레디 크루거'들은 뭘까? 멕시코의 한 스케이트 가게에서 실수로 일찍 판매를 해버린 것도 있고 소각 직전 직원들이 빼돌린 것도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게 30여 점으로 추정된다. 나이키 SB 수집가인 트래비스 스캇도 한 켤레 이상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나이키는 <나이트메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20년 할로윈에 에어 맥스 95 프레디 크루거 에디션을 출시했다. 이번에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훨씬 간접적인 디자인을 채택했다.

| 나이키 SB 덩크 하이 프로 ‘제이슨 부히스'

<13일의 금요일>(1980) 스틸

나이키 SB 덩크 하이 프로 ‘제이슨 부히스'

2007년 호러팩에서 프레디 크루거는 악몽이 되어 사라졌지만 제이슨은 살아남았다. <13일의 금요일> 가면 살인마 제이슨은 핏자국처럼 붉은 선이 그어진 하키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 하키 마스크에서 영감받은 깔끔한 화이트, 블랙, 레드 가죽 컬러웨이가 이 모델의 특징이다. 레드 컬러는 일부러 낡은 가죽 위에 느슨하게 코팅하여 피 묻은 상처처럼 에이징되도록 했다.

| 나이키 SB 덩크 로우 ‘제다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2002) 스틸

나이키 SB 덩크 로우 ‘제다이'

나이키 SB 덩크 로우 ‘제다이'

2004년 5월 출시된 이 모델은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덩크 컬렉션 중 하나다. 디자인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스코트 ‘요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갑피의 짙은 녹색과 베이지색은 마스터 요다의 피부색과 망토를 연상시킨다. 신발끈, 혀 상단, 뒤꿈치에는 광선검에서 착안한 네온 그린을 배치했다. 나이키 애호가 뿐 아니라 영화 팬들에게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에디션의 모범 같은 디자인이다.

| 나이키 덩크 하이 ‘코렐라인'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 스틸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 스틸

나이키 덩크 하이 '코렐라인'

나이키 설립자 필 나이트는 소문난 영화광이다. 영화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필 나이트가 소유한 라이카 스튜디오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닐 게이먼의 원작소설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거장 헨리 셀릭이 영화화했다. 나이키 덩크 하이 ‘코렐라인’은 이 작품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100켤레 한정판이었다. 헨리 셀릭의 수공예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갑피에 수작업으로 바늘땀을 가미했다. 영화 크레디트에 있는 비밀 코드를 통해 영화 홍보 웹사이트에서 신발 상자를 열어야만 구매할 수 있는 방식도 신선했다. 100켤레 중 50박스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쥐 캐릭터 인형이 동봉되었다. 나이키 덩크 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템이다.

| 나이키 SB 덩크 로우 ‘조커' 샘플

<다크 나이트>(2008) 스틸

나이키 SB 덩크 로우 ‘조커' 샘플

나이키 우먼스 덩크 로우 ‘조커'

나이키는 물론 슈퍼히어로와 빌런들에게서도 자주 영감을 받는다. 2023년에도 나이키 우먼스 덩크 로우 ‘조커'를 발매했다. 그중 팬들을 가장 흥분시킨 디자인은 2008년 나이키 SB 덩크 로우 ‘조커'인데 안타깝게도 이 모델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가 <다크 나이트>에서 광기 어린 연기로 화제를 모은 2008년, 나이키 SB는 이 샘플을 공개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정식 발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샘플만 남은 관계로 이 신발은 현존하는 가장 희귀하고 인기 있는 SB 중 하나가 되었다. 2023년 정식 출시된 나이키 우먼스 덩크 로우 ‘조커'와 비교하면 매운맛과 순한맛 정도 차이가 있다.

| 나이키 덩크 로우 ‘틴 울프'

<틴 울프> 스틸

나이키 덩크 로우 ‘틴 울프'

나이키는 2009년 클래식 농구 영화 <덩크슛>(1992), <후지어>(1986) 그리고 <틴 울프>에 영감받은 미디어 팩을 출시했다. 그중 덩크 로우 ‘틴 울프'는 영화 속 비컨타운 고등학교 농구팀 유니폼을 닮았다. 마이클 J. 폭스가 연기한 주인공 스콧 하워드는 늑대인간이다. 신발에 갈색 인조 모피를 둘러서 재치있게 이를 표현했다. <틴 울프> 영화 자체는 거의 잊혀졌지만 모피 두른 덩크 로우의 개성은 스니커즈 팬들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 나이키 덩크 로우 ‘바비'

<바비>(2023) 스틸

나이키 덩크 로우 ‘바비'

바비코어는 2023년 패션계를 강타한 가장 큰 폭풍이었다. 나이키도 그에 맞춰 분홍색 에어 맥스 스콜피온과 덩크 로우를 출시했다. 특히 덩크 로우 바비는 색감 뿐 아니라 인조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다란 N 로고 장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아무렴, 천하의 바비를 하이힐에서 내려오게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 나이키 덩크 로우 ‘웡카'

<웡카>(2023) 스틸

나이키 덩크 로우 ‘웡카'

2005년 출시된 나이키 SB 덩크 로우 ‘움파룸파'

나이키는 지난해 워너브라더스와 손잡고 <웡카> 프로모션용 덩크 로우를 출시했다.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가 디자인에 참여했고 누가 봐도 “웡카!”라고 곧장 알아볼 법한 모델이었다. 같은 원작에서 착안한 2005년작 SB 덩크 로우 ‘움파룸파'와 비교하면 스니커즈 디자인의 상상력이 얼마나 발전했나 느낄 수 있다. 나이키 덩크 로우 ‘웡카'는 단 여덟 켤레만 생산되었고 그중 다섯 켤레가 영화 홍보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돌아갔다.

영화 속에서 영감 받은 나이키 덩크 8종